동욱이짱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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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About Me、

나도 이제 글쓰기 수업에서 벗어나 나의 생각이나 가끔 생각나는 뻘글들을 써보려고 한다.

어제, 낮부터 밤까지 미국 드라마 '24시'라는 것을 보았다.



대통령이 되려는 미국 상원의원을 암살하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대 테러 팀(CTU)'의 리더 와의 대립이

주가 되는 미국 드라마였다. 한창 재밌게 보는데,

유력한 대통령 후보(11개 주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고 있는)인 상원의원 '데이빗 팔머'가 아내에게 한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끝은 대통령을 말하는 거요?, 나를 말하는거요?" 

 우선 기본적인 선행 내용을 이야기해야 될 것 같다.

팔머에게는 딸 '니콜'과 아들 '키이스'가 있었다. 어느날 니콜은 강간을 당하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키이스는

강간범을 찾아가 몸싸움을 벌이고 결국 강간범은 죽게된다. 하지만 이 사실은 팔머를 후원하는 자들에 의해

팔머도 모르는 채로 7년이란 시간동안 은폐된다.

팔머가 대통령이 되려는 직후에 여러 상황에 의해 이 사건이 다시 키이스를 괴롭히게 되고

팔머도 이 사실을 알게된다. 결국 팔머는 죄를 고백하고 양심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려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또한 자신의 무능함에 의한 괴로움으로 기자회견에서 이를 발표하려고 한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가족에 대해 충분한 신경을 못써줬다는 자책감)

팔머의 아내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팔머에게

"그렇다면 이제 정말 끝이에요!" 라고 말한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상했겠지만 앞에 팔머가 말했던,

"그 끝은 대통령을 말하는 거요?, 나를 말하는거요?" 
란 말은 이후에 등장한다.

물론 이전에도 팔머와 아내와의 갈등은 지속됬었다.

팔머는 Humanism차원에서 일을 처리하려 했고, 아내는 오직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모든 일처리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팔머의 저 한마디가 여성에 대해 편견과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렇다. 과연 팔머의 아내는 팔머와 결혼했을때, 아니 최소한 팔머가 대통령 직에 나가려고 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라도,

팔머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팔머의 저 말은 곧,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이오?,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요?'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여성은 저러한 의미를 담는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은 단순히 남편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가족을 위하는 자신의 마음을 왜 몰라주냐는 등의 가식적인 답변을 함으로써 자신의 속마음을 감출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남편일까, 
아니면 남편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졌을때 그 옆자리에 서있을 자기 자신일까.

 
자신의 가족이나 남편이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 그 자체는 분명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보편적 인류의 가치관을 흔들거나 Humanism에 어긋나거나,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송두리째 부정하거나 흔드는 것이라면


본래의 목적이 순수했더라도 타인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자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거나
좋은 취업자리를 강요하고 압박하는 부모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 문제가되는 몇몇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요즘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세계가 발달하면서 집안 외부의 폭넓은 상황과 story들을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정보화 시대의 산물이라고 해야하나?)

자신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또한 자신의 살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는 자식은,
요즘 세계에 거의 없을 것이란 말이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과도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압박하는 부모들은
과연, 자식을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성공한 자식들의 부모가 자신들이라는 사실.
그 자체를 위한 것일까.



 자식이나 남편이 부담과 갈등, 고민이나 역경을 느껴서는 안된다.
가족을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오히려 가족을 '죽음'자체나 사지로 내몰고 있는 가정이 요즘에는 적지 않다.


혹자는 가족이 부담감, 답답한 마음이 들지않게 하는 선에서만
 가족을 위한다고 감히 말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과도한 압박은반발심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만약, 정말 만약에, 내가 팔머의 입장이라면..

미국인이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면, 자식이 자신의 죄로 인해 정말 힘들어한다면,
이것의 공개가 내 선거생활에 영향을 준다면,
보편적 가치관에서 이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자식과 내 양심에 맞고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데 아내가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를 끝까지 반대하고 ..

계속 은폐하기 위해 비 인륜적인 행위까지 서슴치 않는다면..
이 사실들을 모두 알게되고 그래서 아내를 나무라고 반목하고 싸운다면,

그리고 나중에는 아내에게 '그렇다면 이젠 정말 끝이에요!'라는 말을 든는다면..

나라면... 홧김에 아내를 엄청나게 폭행했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을 위해', '당신을 위해', '너 잘되라고..', '다 널 위한거야' 와 같은 
가식적인 말들은 남을 이해시키는데 큰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 이다
오히려 스트레스와 답답함. 고민을 줄 뿐인 것이다.

 큰 일이 터지고 난 뒤에 후회하는 것은 이미 늦는다. 

보편적으로 잘 고민하고 무엇이 최선인지 잘 생각을 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사람은 분명 훗날 사회에 나가서 그만큼 경쟁력이 있을 것은 
분명하지만,
보통 이것이 옳은 출발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대학 교육비 걱정없어요. 학자금 융자가 있거든요~ [?..;] 글쓰기 01분반[계절]

                                                                     ?..


 소수에 의해 다수가 희생되는 것은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바라볼 때,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이전,

사회의 기득권층들은 많은 재화를 가지고 더욱 더 재화를 늘리려 노력하며 살았으며
그렇지 못했던 나머지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도
기득권 세력에게 불평도 표현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
.



결과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이 결국엔 존중되고 실현된다는 점에서
현대에 존재하는 정치제도 가운데 가장 다수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세계 곳곳에 널리 퍼진 것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등장하면서 변화된 핵심은 사회적으로 외면 받고 소외되었던
빈곤층들이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것
이다.



그럼으로써 복지의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자본주의로는 빈곤층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필연적으로 외부에서 해결해 주어야 했고 사람들은 정부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들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복지국가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표현해줄 의무가 있었다.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제도와 법이 제정되었지만 실제로 한국의 복지는 그리 잘 실현되지 않고 있다.


 복지중 하나인 교육복지를 살펴보자.
현실적으로 한국에서의 대학 교육 복지는 선진 복지국가에 비해 열악하다.

대표적으로 대학 교육에 대한 복지를 예로 들 수 있다.
터무니없이 높은 등록금과 교육비는 대학생들에게 분명 부담이 되고 있다.
나라에서는 학자금 융자라는 해결책을 내놓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융자금 이자율은 선진 복지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영국 등 등록금 후불제를 실시하는 대부분의 나라는 학자금 대출 금리가 무이자다.
다른 나라들도 이자율이 최대 3%를 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학자금 대출 금리는 시중 금리와 같은 5.5%로 높은 편이다.

이러한 높은 이자율은 대학생들에게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빚으로 지게 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노동판을 전전하는 남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 여대생 중에는 애인대행 키스방 등
유사 성행위업소에서 울며겨자먹기로 알바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요즘에는 연체율을 낮춰 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학자금대출의 기준을 높이겠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학자금 대출을 받는 대학생들의 가정은 오히려 고소득층이라는 통계자료도 있다.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빚 때문에 학자금 대출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사채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고
나중에는 젊은 나이에 고금리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고 있다.

복지혜택을 주기위해 마련했다는 나라의 생각이 대학생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이를 모르고 있을까?
나라를 운영해 나가는 사람들은 그 방면에서 소위 ‘프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러한 상황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으로 타국이 정부예산을 통해 학자금융자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융자에 필요한 재원을
채권을 발행하여 조달하고 있다
는 점을 들수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등록금이나 학자금 융자에 대한 한계가 정해져있지 않다.
등록금 상한이 없다는 상황은 대출액 제한이 없는 방식의 학자금 융자가 경쟁력 없는 대학들이
정부 학자금 지원에 의지하여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방만하게 운영하는 문제를 야기
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응방안도 필요하다.


 대안으로,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대학의 취업률에 따라 학자금 지원을 차등화 하는 방안이나
학자금 융자와 대학등록금 상한제를 연동하는 방법이 있다.
특히 대학 취업률과 학자금 지원을 연계하는 것은 고등교육의 교육강화 노력을 유도한다는 장점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정부예산을 통해 학자금융자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지만
아직 이것을 시행하기에 한국의 정부는 작은 편
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세금을 기반으로 한 정부의 성장이 필요하다.
정부는 걷은 세금을 복지에만 투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와 기술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먼저 이뤄야 나라 경쟁력이 발전하고,
발전한 큰 정부만이 가지고 있는 재정 중 높은 비율을 복지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민은 당장 힘들더라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부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고 정부는 이러한 국민의 기대해 부응해야 한다.
여러 방면으로 정부와 국민이 같이 노력해 나간다면
우리나라가 선진 복지국가가 되는 것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학생의 인간관계라는 것, About Me、

  대학교를 입학해 지금까지 다니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대학와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 내게 남아있는 사람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은 말했다.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는 피상적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몇몇 사람하고만 깊게 사귀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굉장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더욱이 같은 수업을 듣고, 조모임을 하는 등의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이미 가볍게 여길 관계는 아닌 것이다. 
그 자체로 이미 소중한 인연을 맺은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스쳐갔던 수많은 사람들.
난 이러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1차적인 만남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랬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이 필연적임을 잘 알고 있었고,
한명, 한명 자주 연락을 하였다. 단 둘이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 하며 난 그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것이 잘 한 행동인지,
그때의 내 생각이 맞는 것이었는지, 궁금증이 든다



 내가 연락하기는 쉬워도 연락받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굉장히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내게 있어 이 문장은 문장 그대로의 의미였다.
하루에도 수십명에 달하는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답이 왔고, 그렇게 해서 관계를 맺고..
그러다, 한번은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하루에도 많은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들한테 혹시라도 연락이 왔는데 
내가 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 기분좋게 느껴질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주일 뒤, 나는 핸드폰을 찾았지만 그때까지 내게 온 연락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큰 회의감과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보니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대학 2학년인 지금..자꾸 대학생활이 재미없게 느껴져요. 일학년때는 동아리도들고 엠티 오티도 가고 친구들끼리 이것저것 해보고 해서 나름 시간을 보람차게 보낸것 같은데요. 그런데,,그이후로는 동아리도 저한테 안맞는것 같아서  탈퇴하고, 같이 노는 몇몇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랑은 잘 안맞는 것 같아 같이 놀면서도 저도모르게  마음이 닫히게 되요,,
그래서 현재 2학년 2학기를 보내는 지금 답답해집니다. 말 그대로 같이 밥먹고 수업듣는 그냥 친구는 있지만  진정한 친구가없고 
과생활 ,동아리생활을 안하니깐  친한 선후배도 업구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선후배란 인사하고 밥얻어먹는 그냥그런 사이가 아닌 정말,, 서로가 진정 도움을 줄수 있고 사회에 나가서도 잊혀지지않는 그런 사이를 말하는거에요^^) 

 물론 대학생활에있어 인간관계가 다는아니지만.. 시간이지날수록 자꾸 제 스스로가 이런 상황에 위축 되는것 같아요.. 

처음부터 첫단추를 잘못 끼워서 이렇게 된것 같기도 하고 ,, 후회막심이네요 ㅠㅡㅜ 앞으로 이러다보면 대학생활이 점점 지겨워지고 결국에는 다니기도싫어질꺼 같은데 어떡해야 할까요??그렇다고 2학년인 지금 인간관계에있어 모든걸 다시시작하기에는.. 무리인것 같구요,,그냥 학과공부와 제 실력을 쌓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 매진할까요??''  출처 : 네이버 지식in

'제 고민은 제가 지금 2학년 2학기인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거예요.
그게 사실 제가 나이가 많다보니 공부에 대한 생각이 강해서 인간관계를 많이 소홀히 했었거든요.
까마득한 09학번 후배들이 인사해도 인삼만 할 뿐 재치있게 받아주지도 못하고 이야기도
그냥 묻고 답하는 식으로만 하다보니
지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은 많아도 친한 사람들은 5명내외입니다.
얼마전에 종강총회가 있어서 친해볼겸 참석해서 술좀 먹고 이리저리 말 좀 걸었는데 어떤 후배가 그러더군요
"원래 그렇게 공격적이냐고?", 제가 그때 얼굴만 알던 애들한테 통성명하고 편하게 이야기한게
그 후배한테는 영 아닌 사람으로 보였나봐요. 제가 원래 싸움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그 상황에서 기가 팍 죽어서 종강술모임중에 그냥 집으로 와버렸는데요 집오다가 생각해보니
제가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후배가 영 아니게 대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출처 : 네이버 지식IN


 이 두사람과 필자를 제외하고서라도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인간관계에 있어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는 대학생들의 보편적 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시간과 돈이 무한하고, 서로 원하는 것이 없고, 믿을 수 있고 대화가 잘 통하면
사실상 아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시간'과 '돈'이 제한되어 있고 '서로간의 믿음'과 '소통'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계속 무한경쟁체재로 흘러가고 '돈의 힘'이 계속 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하게 될 것
이다. 개인주의가 심화되며 공동체적 의식과 활동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인연을 맺어도, 서로 각자에게 바라는 바가 이미 전제되어있는 조건에서
맺는 것이 태반
이다. 문제는 서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바라는 것이 있었기때문에 맺은 인연이므로,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뤄졌거나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면 더 이상 그 인연은 지속되지 않는 것
이다. 



 대학와서 굉장히 낯설게 들린 단어가 'Outsider'였다. 중,고등학교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를
대학와서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중,고등학교때는 친구들과 아침부터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점심을 먹고
다같이 똑같은 시간에 끈난다는 점에서 방과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쉬웠고 편했고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교육은 그것과는 다르다. 
각자 자신만의 시간표가 있고 끝나는 시간도 다르다. 수업을 듣는 장소도 친구마다 다르니 
자주 만날수도, 볼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 역시 대학생이 대학에서 인간관게를 맺음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회와 대학의 교육 방식, 이 외에도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들 때문에 실제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갖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어떤 대학생이든 한번쯤은 외로웠던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너무나 힘들고 지칠때, 자신의 상황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누른다. 100개가 넘는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만,
그 사람은 아무한테도 연락을 하지 못한다. 친구들은 많지만 정말 친구다운 친구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피상적이지 않은 진정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할 것은 잦은 연락이다. 자주 의사소통을 할수록 그 사람을 더 잘 알게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베풀어야 한다. 타인을 아우르고 이해해주는
포용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 상대가 힘들때 위로해주고, 기쁠때 같이 기뻐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
하지만 보통 이렇게 먼저 다가가는 행위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베푼 만큼, 받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을 사랑한다면(여기서 사랑이란 무관심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자) 보답받기를 바라면 
안된다. 인간인 이상 기대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베풀었던 만큼, 그것을 온전히 또는 그것보다
더한 것을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타인에 의해 상처를 받고 있는 만큼
타인도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실제로 내게 간단한 연락이라도 주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밥 먹었어?', '과제 했어?', '이거 어떻게 하는거지?', '~좀 알려주라' 라는 가벼운 연락이도
내게 있어 누군가가 의사소통을 했다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나 자신이 타인에게 먼저 이렇게 다가갔을때 타인은 저절로 감화될 것이다.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에도 고마워 하는 친구에게 감격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단순한 희망사항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진보시켜온 것은 희망이었다.
힘든 상황을 겪고, 문제가 되는 상황들을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희망'때문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대학생들이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 피상적이기보다는 진솔해지기를 희망한다.





p.s.
 '난 적어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요. 이렇게 알 수 있게 됐잖아요. 근데 저만 그런가봐요.
섭섭하지는 않지만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네요. 그래도 저는 좋아요! 관계맺음 속에 
함꼐 있으니깐요.' (출처 : 연세대 학우의 글 )


같은 방향을 가는 줄 알았죠
같은 미래를 꿈꾼 줄 알았죠
아니었나봐요

같은 시간에 있는 줄 알았죠
같은 공간에 있는 줄 알았죠
아니었나봐요
  (출처 : 에피톤 프로젝트 노래 '오늘')






Youth Hostel♡ 홍보글 About Me、

 

 

유스호스텔

(나의 대학내 보금자리)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때, 학점이 잘 나올 때도 , 술을 마실 때도 아니고

새로운 곳을 갈 때이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곳을 갈 때면 내 가슴속의 무엇인가가 끓어올라 나를 흥분시킨다. 길을 잃어도 상관없고 계속 걸어도 상관없고 굶으며 다녀도 좋을 정도로 새로운 곳에 대한 탐험은 나를 흥분시킨다. 그런 흥분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아마도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흥분과 낭만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수단과 방법을 찾지 못해 그 재미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연세대 중앙 여행동아리 유스호스텔을 소개하려고 한다.!

 

 

 

( 새로운 곳에서 행복해 하고 있는 나의 모습 )

 

 

 

유스호스텔은 연세대의 정식승인을 받은 유일한 중앙 여행동아리입니다.

1973년 창립되어 벌써 4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 깊은 동아리입니다.

저희 동아리는 일반적인 여행방법과는 달리 아주 재밌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여행을 갑니다. 보통의 단체가 여행갈 때 대규모로, 약간의 강제성을 띄고 우르르 여행을 간다면, 유스호스텔은 그 반대입니다. 동아리 전체가 우르르 모여 여행을 가는 대단위 여행은 한 학기에 세 번 정도입니다. 일반적인 여행은 한 개인이 여행을 기획해서 클럽에 기획서를 올리면 동아리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되고, 가고 싶은 사람들만 자유롭게 따라가는 방식입니다. 게다가 여행을 기획하면 그 여행에 드는 비용 가운데 50%정도를 동아리에서 지원해주고, 같이 가는 사람들도 모두 만원씩 지원해주기 때문에 여행비용부담을 줄여줍니다. 이 지원금은 동아리 회비에서 걷어진 동아리비 입니다.

이런 혁신적인 자극 요인 때문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두 번은 여행이 기획됩니다.

그러다보니 요번 해의 경우에도 벌써 21개의 여행이 기획되었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번이상은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전망대 ,한탄캉,농활,안면도,자전거일주,닭갈비축제,보성녹차밭,정선레일바이크)

 

이런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과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밤에는 운치있는 숙소에서 얘기를 하거나 담력 체험 같은 것도 하며, 마피아, 보드게임 등 다양한 게임도 같이 합니다. 거기다 사람들끼리 밖에 모닥불을 피우고 연세대응원곡을 부르며 응원하고 노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끼리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게임하는 모습과 , 응원곡을 함께 부르며 노는 모습)

 

이런 재밌는 놀이와 함께 , 맛있는 요리까지 먹는다면,...

바비큐와 함께 (실제로 우리 동아리는 여행가서 관습적으로 고기를 바비큐해서 밥과 같이 먹는다!)누군가가 만든 맛있는 찌개나 , 계란찜, 전까지 먹고, 그 다음날은 그 지방의 토속음식까지 먹으면,, 정말 행복합니다.




(바비큐 , 가을전어 , 바다새우 , 겨울빙어 )

 

 

물론 ! 여행을 목적으로 한 동아리라고 해서 사람들이 여행만 가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유스호스텔의 동방(동아리방)은 다른 동방들보다도 훨씬 넓고 침대까지 있으며 , 온풍기까지 있기에 여러분은 동방에는 항상 누군가가 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방에서 사람들과 얘기도하고 밥도 시켜먹으면서, 밖에 같이 나가 놀기도 하면서 여행이라는 방법이 굳이 아니더라도 친목을 다져나갑니다.

 

 

 

( 동방에서 놀다가 갑자기 사진 찍힌 사람들 ..)

 

 

 

(갑자기 놀다가 놀러 간 삼청동 , 월드컵응원 , 남산 , 에버랜드 ,,,)

 

사실 대학생활 하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힘든 일을 겪게 됩니다.

그 힘든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절망하며 고민합니다. 이런 고민들을 혼자 떠안으며 슬퍼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 번뇌하던 유스호스텔 사람들 )

 

그런데 유스호스텔에는 서로가 서로를 정말 아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든 대학생활에서 고민이 생길 때마다 같이 그 고민과 걱정을 덜고 ,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
슬픔을 나누며 밝을 미래를 기원하는 유스호스텔 사람들)

 

 

 

 

 

이렇듯 연세대 중앙 여행동아리 유스호스텔에는 재밌는 여행, 아늑하고 편안한 동아리방, 슬픔을 함께 고민할 사람이 모두 다 존재합니다.

 

이런 유스호스텔에서 가깝게는 서울에서 멀게는 대한민국 최남단까지, 여러 곳곳의 여행을 함께 다닐 신입생들을 모집합니다. ^

혹시 궁금하신 사안이 있으시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제게 메일이나 쪽지로 문의 주세요 환영합니다!

 

 

 dongr22@nate.com

 

 

 

 

 

 

 


군 가산점 제도, 과연 비판해야 하는가 글쓰기 01분반[계절]



‘군복무 가산점 제도 부활’ 이제야 살 맛 나는 男성들..


최근 10일 국방부는 군복무 가산점 제도를 재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군복무 가산점 제도란 공무원 시험과 같은 국가시험에서
군대를 갖다온 남성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
를 말한다.

이 제도는 한때 유지되었다가 남녀차별 문제와 1999년 헌법재판소 위헌판결로 폐지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군 복무기간이 24개월로 환원되면서 국가의 몇 몇 세력이 이 제도를 재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99년과는 달리 사회가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의 원인이다.


여성들의 취업여건이 크게 달라졌다. 1999년 위헌판결이 내려졌을 때 여성 7급 합격자가 6.1%인데,
2009년은 34.8% 또 9급이 20.2%에서 45.5%가 됐다.
그리고 지금 현재 보면 7급 공무원 성별 지원 비율이 남성이 64%, 여성은 36%인데
여성이 35% 합격되고 있다. 여성합격률이 크게 부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요즘은 공채시험 같은 걸 봐도 필기점수도 중요하지만 인터뷰가 상당부분 적용된다. 면접시험을 볼 때
대부분 개인이 낸 스펙을 보게 되는데, 99년에 비해서 지금 여성들은
긴 시간동안 자신들의 개인 스펙을 크게 향상시켜왔다.
하지만 군대를 갖다 온 남성에게는 이러한 것들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이러 이러한 문제들로 최근 군 가산점제도가 다시 이슈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이러한 방침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의 핵심주장을 살펴보면,
군 가산점제도는 군복무 기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고
예전에 비해서 많이 수정되어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는 병역비리를 방지해준다는 것
이다.

반면 여성계는 군복무 가산점제 도입은 여성과 장애인,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성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적 요소가 있고
군복무에 대한 대가는 군가산점제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지불되어야 하며
군 가산점제도는 병역비리를 막지 못한다
며 적극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성부의 주장 중,
 이 제도가군대를 갖다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생각해보자.

 이것이 과연 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에게는 각 개인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사정이 있다.
일례로 여성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문제가 출산 문제이다.
국가에서는 이를 충분히 지원해 주고 있다. ‘출산 휴가’가 지금까지 문제되지 않고
잘 유지되어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국가는 장애인이 장애인 나름대로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지원을 해주고 있는 추세이며, 여러 가지 사회 복지 혜택을 제공하면서
 장애인들이 노력하고 보람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군대를 갖다오는 남성들에게 사회가 특별히 지원하거나
고려해주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군대를 가는 남성들에게도 사회가 무언가 보장해주는 것이 자명한 것이다.


흔히 군 가산점제도가 남성들만을 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데
제도는 남성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국방의 의무를 다한 제대 군인을 위한 제도이다.
 즉, 군대를 갖다온 여성들도 똑같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게 여성들은 군복무의 의무를 갖지는 않는다.

세계에서 국방이 의무인 국가들에서는 양성 모두에게 일정의 국방의 의무를 부여한다.
즉 여자들도 군의 입대 혹은 대체복무의 의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오로지 남성에게만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다.
 이것은 인정해 줄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남녀의 평등을 주장하며 군 가산점제도의 폐지를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평등에 어긋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군 가산점 점수는 또한 실제로 큰 혜택은 아니다.
군대 생활 2년과 낮은 가산점을 비교해보면,
가산점 제도는 단순히 명분상 만들어 놓은 제도라는 생각마저 든다.
오히려 필자는 군 가산점 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가산점의 비중도 과거처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의 남성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청년 20대 시기일 것이다.
물론 태어나서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도 중요하기는 하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
또 이 시기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해 대학 과정을 마치고, 일자리를 구해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청년 시기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이때의 일자리와 안정성에 따라 남은 30~50년의 인생이 편한 삶이 될 수도 있고,
힘들고 고달픈 삶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가 군에 입대하는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결코 짧다고 볼 수 없는 2년이란 시간동안
사회에서 떨어져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삶의 중요한 시기를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데 투자한 남성들에게
국가가 보답을 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의욕을 갖고 복무를 할 수 있을지 의문
이고
누가 지원해줘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보면 이번 군복무 가산점 제도의 부활은
연평도 사건과 관련하여 군인들의 의욕을 크게 신장하려는
국방부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이 제도가 군 미필자에 대한 역차별 대우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이 말은 신빙성이 있는 주장일까?
 
 군 미필자는 군필자와 비교하여 적어도 2년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삶을 위해 더 투자할 수 있다.

군대라는 곳은 오직 국방의 의무를 위해 사람들의 인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군대에서 사회생활을 접한다거나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행위는 꿈도 꿀 수 없다.

군대에서 막 제대한 대학생들은 다시 원래의 사회생활로 돌아가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고 긴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군 미필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군필자와의 시험경쟁에 있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보답을 한다고 하니
역차별이라고 말하며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행위이다.

특히 병역을 ‘신성한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군대를 빠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과 군대를 갖다 온 일반 서민들을 동등하게 보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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